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원규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중에서…
항구에 머물 때 배는 언제나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은 배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
그저 잠재적이면서도 무한한 교육의 의미가 있을 거라는
꼴통 다강울타리의 고집불통!
실행에 옮기기 직전…약간의 객기와 마지막 뚝심이 필요하다.
울타리W와 눈덮인 지리산 천왕봉을 향했던 것이 5년 전 이던가,
그 이후 가족전원 지리산종주를 계속해서 꿈꿔왔다.
노고단에 올라 주능선을 바라보며 욕심을 꾹꾹 누른 것만도 세 번,
더 철저한 준비를 위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차근차근 가족산행의 강도를 높여간다.
그간의 산행으로 체력은 어느 정도 갖춰진 것 같았으나 뭔가 2% 부족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터지기 시작한다.
“엄마, 아빠~ 빨리 올라와봐! 여기 너무 멋져!!”
경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여태 이 한마디를 기다렸나 보다.
지리산종주, 해볼 만하다!
지리십경 중에 하나 노고운해!
같은 길을 걸어도 5분 차이로 저런 광경을 볼 수도 못 볼 수도…
우리는 행운을 거머쥐고, 지리산종주 33.4km 다해와 강해의 도전이 시작된다.
영등포역에서 출발하는 구례구행 막차를 타러 갈 준비가 끝났다.
아빠 24.8kg, 엄마 13.5kg, 다해 2.7kg, 강해 2.1kg…..전자저울의 무게 일뿐
책임감에서 오는 부담감의 무게는 100kg 정도 되려나?
2박4일의 여정, 두려움과 설레임 속에 나에게도 도전이 시작된다.
0시56분, 계룡역 플랫폼.
정성 반, 소고기 반 고추장볶음과 응원의 메시지를 직접 전하러 그 시간에 나오셨다.
모니카님…사랑해요~
03시18분 구례구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성삼재에 올라 노고단대피소 05시30분 도착.
울타리W님…노고단 구름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눈가가 촉촉히 젖어오나요?
불평 한마디 없이 무거운 짐 같이 나눠 들고 선뜻 나서주어 정말 고맙다! 고마워~
돼지령, 피아골삼거리를 지나 갈수기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샘물
임걸령에서 물을 보충한다.
첫날 산행의 중식을 이동식으로 해결할 장소로 낙점했던 삼도봉에 도착한다.
지금 우리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그리고 경상남도의 경계에 서 있다.
경남에선 소금과 해산물을, 전북에선 삼베와 산나물 등을 이고 올라와 물물교환했던
화개재를 지나 첫날 산행의 하이라이트 토끼봉, 명선봉 구간을 힘겹게 넘어가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는 연하천대피소가 나온다.
보통은 벽소령까지 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밤기차에서 서너시간 토막잠이 전부였던
아이들의 체력안배를 위해 계획한대로 여기에서 1박을 한다.
산행 둘째날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궂은 날씨임에도 가족 모두의 표정이 밝다. 참 고맙다!
우뚝 솟은 형제봉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벽소령으로 향하는 아름다운 능선을
이번엔 구름이 가득한 날씨 탓에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지리산은 저 멀리 보이는 경관뿐만 아니라 바로 앞을 지나는 아기자기한
동화속 이야기 같은 아름다운 길들을 많이 담고 있다.
게다가 이번엔 아이들 페이스에 맞춰 걸으니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소소한 것들이 눈에 가득 담긴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산장인 동시에 안 좋은 기억 또한 간직하고 있는 벽소령대피소.
다섯번째 방문인데 오늘은 반겨줄 생각을 않는다. 구름에 파묻혀 나올 생각을 않는다.
힘들고 지칠 만도 한데 덕평봉 선비샘…물맛 좋았나 보다.
두번째 밤을 보낼 세석대피소에 도착하려면 칠선봉과 영신봉을 넘어야 한다.
이 자식~ 많이 컷다! 내년이면 학교에 들어간다니......
지리산 산장 중에선 오성급이라 해야하나? 세석대피소의 새벽이다.
세번째 날 아침이 밝았다. 촛대봉에서 바라 본 세석평전과 영신봉 아래 조그맣게 세석대피소가 보인다.
필히 눈으로 담아야 할 경관이다.
이 정도 페이스라면 성인기준으로 오늘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까지 갈 수도 있겠다.
욕심부릴 이유는 없지만 착실히 가는 데까지 가보자. 다강울타리가족 화이팅!
장터목으로 가는 길 삼신봉을 넘으니 하늘이 잠깐 마음을 열어 장관을 선사해 주고
연하봉의 터줏대감이 통행세를 내라 한다.
산청군 시천면 사람들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물물교환과
물건을 사고 팔던 곳. 지금도 등산객의 왕래가 제일 많은 곳이다.
천왕봉의 베이스캠프?이며 사통팔달 뚫려있는 이곳은 장터목대피소다.
다해, 강해와 함께 성삼재에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신통방통함과 대견함은 비단 아이들에게서만 느껴진 게 아니었다.
너무 감사하고 사랑스런 마음…서로 느낄 수 있었다.
이놈들 너무 팔팔하다!
너네들 좀 힘든 척 해주면 안되겠니?
장터목에서 천왕봉에 오르는 길…고사목이 지키고 서 있는 제석봉.
세찬 바람과 구름 속에 더욱 스산한 느낌이 들어 외롭지만
다해! 꿋꿋하게 가파른 길을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다.
강해를 돌보며 분위기를 이끌었던…이번 지리산종주의 일등공신이다.
하늘로 통하는 관문, 통천문.
천왕봉! 이제 500m 남았다.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
1915m 지리산 천왕봉이다.
구름에 묻힌 카메라가 아니라 하더라도
내 눈에 저 광경은 계속해서 뿌옇게만 보인다.
강해야, 큰 일을 해낸 거야!
용기, 자신감, 끝까지 포기하지 않구…...아빠도 강해와의 약속 지킬께!
다해야, 이번 가족산행단 대장은 너였어! 정말 잘해줘서 고마워.
아빠도 다해와의 약속 지킬께!
끝도 없이 내려오는 가파른 길, 긴장을 풀면 안된다.
끝까지 아름다워야 아름다운 도전으로 기억될 것이다.
천왕봉 바로 밑 남강의 발원지 천왕샘에서 한숨 돌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법계사와 로타리대피소를 지나 중산리로 향한다.
2011년 9월 9일 새벽 4시45분 성삼재에서 웃으면서 산행을 시작해...
2011년 9월 11일 저녁 6시30분 중산리에서 웃으면서 산행을 마친다.
2박4일의 여정,
34시간의 산행,
종주코스 33.4km(성삼재-천왕봉-중산리)
가족전원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격려와 조언, 함께 걱정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다강울타리 가족의
다음 도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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